요하네스 카시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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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하네스 카시아누스는 360년경 현재의 루마니아 지역에서 태어난 기독교 수도사로, 서방 수도원 제도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팔레스타인과 이집트에서 수도 생활을 한 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부제로 서품되었고, 로마를 거쳐 마르세유에 생 빅토르 수도원을 설립했다. 카시아누스는 저서를 통해 영성과 수도 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전파했으며, 특히 『수도원 규범』과 『강론집』은 서방 수도원 규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반펠라기우스주의 논쟁에 관여했으며,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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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카시아누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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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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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칭 접두사 | 성인 |
이름 | 요한 카시아누스 |
출생일 | 약 360년 |
사망일 | 약 435년 |
공경하는 교파 | 가톨릭 교회 정교회 성공회 |
출생지 | 스키티아 미노르, 로마 제국 |
사망지 | 마실리아, 갈리아 나르보넨시스, 서로마 제국 |
직함 | 교부 신학자 수도사 |
주요 성지 | 생 빅토르 수도원, 마르세유 |
기념일 | 동방: 2월 29일 (윤년이 아닌 해에는 28일) 서방: 7월 23일 |
생애 | |
라틴어 이름 | Ioannus Cassianus |
그리스어 이름 | Ιωάννης ο Κασσιανός |
2. 생애
로마에 머무는 동안, 카시아누스는 남부 갈리아의 마르세유 근처에 이집트 스타일의 수도원을 세우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또한 404년에서 415년 사이에 안티오크에서 잠시 사제로 활동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415년경 마르세유에 도착한 그는 생 빅토르 수도원을 설립했다. 이 수도원은 남녀 수도자를 위한 복합 시설이었으며, 서방 세계 최초의 수도원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생 빅토르 수도원은 이후 서방 수도원 발전에 중요한 모델이 되었다.
카시아누스의 업적과 저술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누르시아의 베네딕토는 자신의 수도 규칙에 카시아누스의 여러 원칙을 통합하고, 수도승들에게 그의 작품을 읽도록 권장했다. 이를 통해 카시아누스의 사상은 베네딕토회, 시토회, 트라피스트회 등 여러 수도회를 통해 라틴 교회의 영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카시아누스는 435년 마르세유에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와 수도 생활
카시아누스는 360년경 스키티아 마이너(현재의 도브루자,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공유하는 역사적 지역)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학자들은 그가 갈리아 출신일 가능성도 제기한다. 그는 부유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며, 그의 저작에서는 키케로와 페르시우스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 모두 능통했다.젊은 시절, 카시아누스는 친구 게르마누스와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성지 순례를 떠났다. 이후 25년간 게르마누스는 카시아누스와 동행했다. 팔레스타인에서 그들은 베들레헴 근처의 한 은둔소(수도원)에 들어가 약 3년 동안 머물며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카시아누스와 게르마누스는 이집트 스케테 사막으로 가서 여러 수도원을 방문하며 기독교 은수자들의 영성을 깊이 탐구했다.
약 15년이 지난 399년경, 카시아누스와 게르마누스는 알렉산드리아 대주교 테오필루스가 일으킨 신인동형론(神人同形論) 논란에 휘말리게 되었다. 카시아누스는 당시 많은 수도승들이 테오필루스의 주장에 대해 "씁쓸하게" 받아들였으며, 그가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왜곡한다며 이단으로 비난했다고 기록했다. 카시아누스와 게르마누스는 이 문제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로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약 300명의 다른 오리게네스 지지 수도승들과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피신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그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에게 보호를 요청했다. 카시아누스는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에게 부제로 서품받았고, 황실과의 갈등 속에서 그를 따르는 성직자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404년 요한 크리소스토모스가 정치적 압력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추방당하자, 라틴어에 능통했던 카시아누스는 로마로 파견되어 교황 인노첸시오 1세에게 추방된 총대주교의 입장을 변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2. 2. 마르세유 수도원 설립과 활동
카시아누스의 영적인 가르침은 서유럽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서방 교회의 영성, 특히 누르시아의 베네딕토와 이냐시오 데 로욜라 같은 인물들은 카시아누스로부터 기본적인 생각들을 가져왔다.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칠죄종에 대한 가르침을 카시아누스에게서 받아들여, 양심 성찰과 기도 생활에 적용했다.
필립보 네리는 카시아누스의 글을 평신도들에게 읽어주었으며, 자신의 가르침을 시작할 때 자주 인용했다. 카시아누스는 구원을 이루는 데 있어 기도와 개인적인 금욕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정의와 은혜(예정론)를 강조한 것과는 다른 관점이었다. 또한, 카시아누스가 제시한 여덟 가지 나쁜 경향(사상)을 극복하라는 가르침은 특히 아일랜드의 수도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3. 주요 저서
카시아누스는 글쓰기를 비교적 늦게 시작했으며, 중요한 인물들의 요청이 있을 때만 저술 활동을 했다. 그의 저술은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의 자료에 기반했지만, 자신만의 사상을 더하여 방대한 저작으로 발전시켰다. 카시아누스는 북서부 나일 삼각주 사막의 초기 수도원 중심지였던 나트리아, 켈리아, 스케티스의 "오리게네스주의" 수도자들을 존경했는데, 이들 역시 에바그리우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에바그리우스는 카시아누스 사상 형성에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420년경, 갈리아 나르보넨시스의 아프토의 카스토르 주교의 요청으로 카시아누스는 두 가지 주요 영성 저작인 《수도원 제도》( De institutis coenobiorumla )와 《강론집》( Conlationesla ) 또는 《스키티스 사막의 교부 강론집》( Collationes patrum in scythica eremola )을 저술했다. 이 책들을 통해 그는 이집트 사막 교부들의 지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서방 교회에 전달하고자 했다. 《수도원 제도》는 수도 공동체의 외적인 조직과 규율을 다루는 반면, 《강론집》은 "내면의 인간 훈련과 마음의 완성"이라는 영성 심화의 문제를 다룬다.
그의 저서들은 간결하고 직접적인 스타일의 라틴어로 쓰였으며, 빠르게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이는 동방 수도자들이 그를 자신들의 일원으로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의 작품 중 일부는 11세기까지 조지아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3. 1. 『수도원 규범』 (De institutis coenobiorum)
De institutis coenobiorumla은 아프토의 카스토르 주교가 갈리아 지방에 이집트 모델을 따른 공동 수도원 설립을 요청함에 따라 저술되었다. 당시 갈리아에서는 투르의 마르티누스의 활동과 술피키우스 세베루스의 저작(마르티누스 전기, 대화)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데, 카시아누스는 이를 다소 혼란스러운 운동으로 보고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는 특히 수작업을 강조하며 레랭 섬에 오노라투스가 세운 수도원 모델에 더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높이 평가했다.이 책은 총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 1권~4권: 수도사의 의복, 기도(특히 시편 기도), 수도 생활의 규칙 등 수도 공동체의 외적인 제도와 규율을 다룬다.
- 5권~12권: 도덕에 관한 규칙, 특히 8가지 주요 악덕(폭식, 색욕, 탐욕, 분노, 슬픔(tristitiala), 나태(acediala), 허영, 오만)을 상세히 설명하고, 이를 극복하고 치유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카시아누스는 이 책에서 펠라기우스주의의 단순한 의지 개념보다 더 복잡한 인간의 의지 문제를 다룬다. 그는 특히 고집스러운 의지를 가진 수도사들을 염두에 두고, 인간의 타락한 의지를 분석하며, 공동체의 선과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위해 개인의 의지, 심지어 선한 의지까지도 종속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수도원 규범』 각 권의 주제이다.[1]
권 | 라틴어 제목 | 주제 |
---|---|---|
1 | De habitu monachorumla | 수도복과 그 상징적 의미 |
2 | De canonico nocturnarum orationum et psalmorum modola | 시편 기도 방식: 밤 기도 |
3 | De canonico diurnarum orationum et psalmorum modola | 시편 기도 방식: 낮 기도 |
4 | De institutis renuntiantiumla | 새로운 수도사를 위한 규칙과 지침 |
5 | De spiritu gastrimargiaela | 첫 번째 악덕: 폭식 |
6 | De spiritu fornicationisla | 두 번째 악덕: 간음 |
7 | De spiritu filargyriaela | 세 번째 악덕: 탐욕 (돈에 대한 사랑) |
8 | De spiritu iraela | 네 번째 악덕: 분노 |
9 | De spiritu tristitiaela | 다섯 번째 악덕: 슬픔 |
10 | De spiritu acediaela | 여섯 번째 악덕: 나태 (acediala) |
11 | De spiritu cenodoxiaela | 일곱 번째 악덕: 허영 |
12 | De spiritu superbiaela | 여덟 번째 악덕: 오만 |
3. 2. 『강론집』 (Conlationes)
요하네스 카시아누스(Johannes Cassianus)의 저서인 ''강론집''(Conlationes|콜라티오네스la)은 교황 레오와 프레쥐스 주교, 그리고 수도사 헬라디우스에게 헌정되었다. 이 책은 카시아누스가 이집트 스케티스 수도원의 장로들과 영적이고 금욕적인 삶의 원리에 대해 나눈 중요한 대화들을 요약한 것이다. ''강론집''은 영적 신학과 금욕적인 삶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기도, 분별력, 완전함, 은총과 자유 의지, 영적 지식, 우정 등 다양한 주제를 포함한다.이 책은 나중에 베네딕토회 공동체에서 저녁 식사 후에 읽혔으며, 라틴어 제목인 ''Collationes''에서 "가벼운 식사"라는 의미의 "collation(콜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
카시아누스의 ''강론집'' 개요는 다음과 같다.[1]
강론 | 라틴어 제목 | 주제 | 화자 |
---|---|---|---|
1 | De monachi destinatione vel fine | 수도사의 목표와 종착점 | 모세(스케티스) |
2 | De discretione | 분별력 | 모세 |
3 | De tribus abrenunitationibus | 세 가지 포기 | 파프누티우스 (스케티스) |
4 | De concupiscentia carnis ac spiritus | 육신의 욕망 | 다니엘 (스케티스) |
5 | De octo vitiis principalibus | 여덟 가지 주요 악덕 (칠죄종의 원형) | 사라피온 (스케티스) |
6 | De nece sanctorum | 성도 살해 | 테오도르 (켈리아) |
7 | De animae mobilitate et spiritalibus nequitiis | 악령과 영혼의 가변성 | 세레누스 (스케티스) |
8 | De principatibus | 권세 | 세레누스 |
9 | De oratione | 기도(성향, 유형) | 이삭 (스케티스) |
10 | De oratione | 기도(끊임없는, 방법) | 이삭 |
강론 | 라틴어 제목 | 주제 | 화자 |
---|---|---|---|
11 | De perfectione | 완전함 | 카이레몬 (파네피시스 근처의 은수자) |
12 | De castitate | 정결 | 카이레몬 |
13 | De protectione Dei | 은총과 자유 의지 | 카이레몬 |
14 | De spiritali scientia | 영적 지식, 성경 해석 | 네스테로스 (파네피시스 근처의 은수자) |
15 | De charismatibus diuinis | 카리스마 | 네스테로스 |
16 | De amicitia | 우정 | 요셉 (파네피시스 근처의 은수자) |
17 | De definiendo | 맹세와 약속 | 요셉 |
강론 | 라틴어 제목 | 주제 | 화자 |
---|---|---|---|
18 | De tribus generibus monachorum | 세 종류의 수도사 | 피아문 (디올코스 출신, 수도원에서 은수자로 전향) |
19 | De fine coenobiotae et heremitae | 수도원 생활자와 은수자 | 요한 (디올코스 출신, 은수자에서 수도원 생활자로 전향) |
20 | De paenitentiae fine et satisfactionis indicio | 참회와 보상 | 피누피우스 (파네피시스 출신, 수도원 생활자) |
21 | De remissione quinquagensimae | 오순절 동안의 휴식 | 피누피우스 |
22 | De nocturnis inlusionibus | 꿈과 야간 몽정 | 피누피우스 |
23 | De anamarteto | 무죄 | 테오나스 (스케티스 출신, 은수자) |
24 | De mortificatione | 자기 억제, 포기 | 아브라함 (디올코스 출신, 은수자) |
''강론집''의 배경이 되는 이집트 사막 은둔자들의 영성 수련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첫째는 정화(Purgatio, 그리스어 카타르시스) 단계로, 젊은 수도자들이 기도와 금욕적인 수행을 통해 탐식, 욕망, 소유욕 등 "육신"의 욕망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수년이 걸릴 수 있으며, 성령으로부터 오는 은총을 통해 욕망에 저항하는 힘을 얻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둘째는 조명(Illuminatio, 그리스어 테오리아)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수도자들은 복음서에 나타난 거룩함의 길, 특히 산상 설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그리스도와 깊은 일치를 추구한다. 많은 수도자들이 이웃을 돕고 제자를 받아들이며 살아가지만, 이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는 결합(Unitio, 그리스어 테오시스)이다. 이 단계에서는 수도자의 영혼이 하나님의 영과 하나 되는 신비적 합일을 경험하며, 이는 종종 솔로몬의 노래(아가서)의 결혼 비유로 묘사된다. 이러한 깊은 영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나이 든 수도자들은 더욱 깊은 사막이나 외딴 숲으로 은둔하기도 했다.
카시아누스는 엄격한 금욕주의를 강조했지만, 현실적인 지혜로 이를 조절했다. 그는 환대가 금욕적인 일상보다 우선해야 하며, 가장 깊은 묵상에 잠긴 은둔자라도 방문객을 맞이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금욕주의와 이웃에 대한 봉사는 실천적인 삶의 중요한 두 측면으로 여겨졌다.
''강론집'' 10권에서 카시아누스는 "하나님에 대한 영원한 인식을 갖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도로 시편 70편(69편) 2절 "Deus, in adiutorium meum intende. Domine, ad adiuvandum me festina|데우스, 인 아디우토리움 메움 인텐데. 도미네, 아드 아디우반둠 메 페스티나la"("오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주님, 저를 속히 도우소서")를 권장했다. 그는 이 구절이 인간 본성의 모든 감정을 담고 있어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으며, 하나님께 대한 간구, 겸손한 고백, 자신의 연약함 인식, 보호에 대한 신뢰, 사랑과 자비, 유혹에 대한 경계심 등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기도가 악마의 공격에 맞서는 강력한 방패가 된다고 말했다.
누르시아의 베네딕토는 그의 규칙에서 카시아누스의 ''강론집''을 높이 평가했으며,[2][3] 카시아누스가 권장한 이 시편 구절은 서방 교회의 시간 전례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모든 정시 기도는 이 구절로 시작하며, 초대경으로 시작하는 경우에만 생략된다. 알폰소 리구오리 역시 이 짧은 기도를 끊임없이 바칠 것을 권장하며 카시아누스의 가르침을 인용했다.
카시아누스의 사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적 관점과 대비되는 측면이 있어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강론집'' 13권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선한 의지의 아주 작은 빛"이라도 인간 스스로 시작할 수 있다는 주장은 당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들에게 반펠라기우스주의적 경향으로 비판받았다. 아퀴타니아의 프로스페르나 카시오도루스 등이 이러한 비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카시아누스는 레린 수도사들에게 보낸 글과 ''강론집'' 13권에서 자신의 입장을 보다 명확히 했는데, 선한 의지 자체도 결국 하나님에 의해 "자극"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선한 의지를 보시고 인도하시며, 의지가 약해졌을 때는 권면을 통해 다시 북돋아 주신다고 말했다.
카시아누스는 영적 진보에 있어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의지에만 의존하는 것은 교만이라는 최초의 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수도자가 자신의 의지를 정복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악마가 특히 밤에 활동한다고 믿었던 초기 수도자들의 생각을 전하며, 악마의 유혹에 맞서기 위해 시편 35편 1-3절과 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카시아누스를 반펠라기우스주의자로 규정하는 견해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로렌 프리스타스(Lauren Pristas)는 카시아누스에게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이지만, 자유로운 인간의 동의와 선택 능력의 회복 역시 포함한다고 주장하며 그의 사상이 반펠라기우스주의가 아니라고 본다. 어거스틴 캐시데이(Augustine Casiday) 역시 카시아누스가 인간의 선의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오직 신성한 개입만이 영적 진보를 보장한다고 보았음을 지적하며, 궁극적으로는 신성한 은총의 필요성을 강조했음을 보여준다.
라틴 교회는 오렌지 공의회 (529년)에서 반펠라기우스주의를 공식적으로 단죄했지만, 카시아누스 자신은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오렌지 공의회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으며, 후대의 가톨릭 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카시아누스와 같은 저술가들의 관점을 통해 그의 사상을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4. 영성
카시아누스의 영적인 전통은 서유럽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서방 교회 영성의 상당 부분, 예를 들어 누르시아의 베네딕토와 이냐시오 데 로욜라는 카시아누스로부터 기초적인 개념을 가져왔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칠죄종에 대한 가르침을 카시아누스에게서 가져와 양심 성찰과 기도에 적용하였다. 또한 필립보 네리는 카시아누스의 글을 평신도에게 읽어주었으며, 자신의 가르침을 시작할 때 자주 인용하였다.
카시아누스는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 기도의 역할과 개인의 금욕주의를 강조하였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강조했던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예정론)와는 대조되는 측면이다. 그의 여덟 가지 사악한 경향을 극복하라는 가르침은 특히 아일랜드 수도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5. 반(半)펠라기우스주의 논쟁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카시아누스는 서기 425년경 반펠라기우스주의라고 불리게 된 구원론적 견해를 표현한 남부 갈리아 수도원 운동의 주요 인물이다. 이 견해는 구원의 첫 단계가 신의 은총 없이도 개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며 자유 의지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의 사상은 죄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인간의 의지만으로 충분하다고 본 펠라기우스주의와, 원죄와 은총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강조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 사이에서 일종의 "중도"로 평가받기도 한다.
성공회 사제이자 역사가인 오언 채드윅은 카시아누스가 신의 은총이 개입하기 전에 인간이 먼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해석했다. 또한 장로교 신학자 B. B. 워필드는 카시아누스를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을 시작하면 하나님이 그 시작을 돕는다고 주장한 남부 갈리아 수도사들의 지도자로 보았다.
반면, 아우구스틴 캐시데이는 카시아누스가 실제로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 '구원에 관련된 모든 것', 심지어 믿음까지도 책임진다"고 주장했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카시아누스를 완전히 정통으로 받아들이는 일부 동방 정교회 신자들은 로마 가톨릭교회가 카시아누스를 거부하는 입장을 비판한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교회가 구원에 관련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에서 비롯되며, 따라서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동의조차도 은총의 결과라는 입장을 취한다고 지적한다.
동방 정교회 신학자 게오르기 플로롭스키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이러한 입장과 캐시데이가 해석한 카시아누스의 입장을 동방 정교회에도 적용하며, 동방 정교회는 "하나님은 구원의 과정에서 모든 것을 시작하고, 동행하며, 완성하신다"고 항상 이해해왔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칼뱅주의의 거부할 수 없는 은총 개념은 거부한다고 덧붙였다. 동방 정교회는 카시아누스나 그의 가르침을 정교회의 입장을 증언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문제 삼거나 비난한 적이 없다.
6. 영향
카시아누스의 영적인 전통은 서유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 베네딕토부터 이냐시오 데 로욜라에 이르기까지 서방 교회의 여러 영성가들이 카시아누스의 사상에서 기초적인 개념을 가져왔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칠죄종에 대한 가르침과 참회,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카시아누스에게서 가져왔다. 필립보 네리는 평신도들에게 카시아누스의 글을 읽어주었으며, 그의 저서를 자신의 강론 시작점으로 자주 활용했다. 카시아누스는 또한 클리마쿠스 요한과 다마스쿠스의 요한, 성 도미니코, 프란치스코 드 살, 존 헨리 뉴먼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카시아누스는 구원을 얻는 데 있어 기도와 개인적인 금욕주의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정의와 은총(예정론)을 강조하며 인간의 노력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본 아우구스티누스와 대조된다. 특히 그의 여덟 가지 악한 경향을 극복하라는 가르침(「수도원 제도」 제5권~12권)은 아일랜드 수도사들이 고행을 실천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그의 저서 「수도원 제도」는 성 베네딕토 규칙서에 나타난 수도원 조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성 베네딕토는 자신의 규칙에 따라 수도승들에게 카시아누스의 「강연」 중 일부를 읽도록 권장하기도 했다. 카시아누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수도원 제도는 중세 초 학습과 문화를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당시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거의 유일한 기관이기도 했다.
카시아누스의 저술은 동방 정교회의 신비주의 기도 문헌집인 『필로칼리아』(Φιλοκαλία|필로칼리아el, 그리스어로 '아름다움을 사랑함'이라는 뜻)에도 일부 발췌되어 실려 있다.
현대 사상가 미셸 푸코 역시 카시아누스의 사상에 주목했는데, 특히 그가 '육체'를 정의하고 육체와 맞서 싸우는 엄격한 방식에 관심을 보였다.[5] 이러한 연구 등의 영향으로 카시아누스의 사상과 저술은 최근 종교인이 아닌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관심을 얻고 있다.
7. 기념
동방 정교회는 요하네스 카시아누스를 성인으로 여기며, 축일은 2월 29일이다. 이 날은 윤년에만 돌아오기 때문에, 교회력에서는 종종 그의 축일을 다른 날짜(보통 2월 28일)로 옮겨 기념하기도 한다.[6]
로마 가톨릭교회 역시 그를 성인으로 인정하며, 그의 사망일인 7월 23일을 축일로 기념한다. 카시아누스는 동시대 인물인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나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와 마찬가지로, 후대에 도입된 정식 시성 절차를 거치지는 않았다. 교황 우르바노 5세는 그를 "sanctus"(성인)라고 칭했으며, 그는 갈리아 순교록에 포함되었다.[7] 또한 7월 23일을 축일로 하여 로마 순교록에도 등재되어 있다. 9세기 초 아일랜드 교회에서는 옹구스 순교록에 "Lasin nEoin Cassian assa érchain corann"(그의 면류관이 매우 아름다운 요한 카시아누스)이라고 언급하며 11월 25일에 카시아누스를 기념하기도 했다. 그는 대부분의 성인들과 달리 일반 로마력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마르세유 대교구와 일부 수도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기념일로 지낸다.
2022년에는 성공회 전례력에도 공식적으로 추가되어 7월 23일을 축일로 기념하게 되었다.[8]
카시아누스의 유해는 마르세유에 있는 생 빅토르 수도원 지하 예배당에 안치되어 있다. 그의 머리와 오른손은 수도원 주 교회에 보관되어 있다.
참조
[1]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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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 a new song : recovering Psalm singing for the twenty-first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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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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